찢어버리고 싶었던 고전13장 (사랑의 장)
사춘기를 거쳐 이성에 눈을 뜨면서 활달한 성격이든 소극적 성격이든 누구나 한 두번은 사랑의 몸살을 앓게 된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면 바닷 색깔 고동소리 같은 그리움으로 번져오고 검정 먹구름으로 소낙비라도 내린다면 비는 파스텔톤 수채화같은 그림이 되어 진한 커피향을 담은 감미로운 음악처럼 온 영혼을 적셔온다.

이럴 때면 시어(詩語) 한 구절만으로도 원시림 속에 갇혀 있던 순수한 꿈들이 되살아나고 막 건져올리는 싱그러운 언어의 풋냄새가 들꽃이 되고 바람이 되고 하늘이 된다. 심지어는 꿈결에서 조차도. 한 인간이 성숙해 가기 위해 일정량 만큼 정해진 사랑의 커리큘럼이 시작되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많은 크리스챤들에게 사랑의 장이라고 애송되는 고린도전서 13장은 나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으로 입교(入敎)하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걸림돌 중의 하나였다. (☞ 나머지 걸림돌로 대략 서너가지가 더 있었는데 그것들은 기회가 닿는대로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지상에서의 순간적인 사랑보다는 하늘에서의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였던 나로서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에 도달하기 전까지 세상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배반이요 낙오되어 가는 길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랑의 도식으로 불안해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의 깊이가 더해 갈수록 이 감정을 영원으로 승화시킬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기독교 신앙을 생각하게 되었고 같은 길을 원하지 않는 사람과의 냉정한 아듀를 선언하면서 까지 다시금 영원한 사랑의 원천이라 불리워지는 기독교 신앙의 테두리안으로 되돌아 오곤 하였다.

그러나 돌아갈 퇴로마저 완전히 차단하고 전투에 나섰던 로마의 병사들처럼 정작 기독교의 신앙안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고 답답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고린도전서 13장, 즉 사랑의 장에서 나타난 사랑에 대한 정의(定意) 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싫어하고 진리를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고 명백했다. 너무도 고루하고 따분하며 지루하고 답답한 도덕교과서 같은 "사랑의 정의" 앞에서 젊은 감수성은 도저히 승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3장을 뜯어내고 차라리 한용운의 "님의 침묵"으로 갈아끼고만 싶었다. 아니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도 괜찮고 아니면 서정윤의 "홀로서기"도 그 보다는 훨씬 더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거기에는 "푸른 산빛"이 나오고 "가을 속"이 나오고 "그리움"이 적셔 나오지 않던가?

당연히 "십자가에 못박혀서", "가시관 쓰시고", "피 흘리시고", "죽으시고", "이 죄인을 용서하시고", "지옥", "심판과 형벌"등등의 기독교 가르침은 어느것 하나 나의 정서에 전혀 흡입될 수 없는 전혀 이질적이고 혐오적인 요소 뿐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피를 좋아하는 "푸주간 종교"이고 "신파극"같이 억지 감정을 쥐어짜며 무조건 자기 비하적이고 학대적이며 맹목적인 종교라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다시 다른 길로 찾아나섰지만 갈 곳은 없었다.

그리고 나서, 내 손가락의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들이 흐른후에 나를 포함하여 인간들이 구가하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정욕적"이고 "욕정적"이며 "자기 이기적"이고 그림자 같은 허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서야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 하나님이 현재의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장 "숭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숭고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아가서에서 노래하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노래처럼 감미로운 사랑의 연가를 그날이 올 때까지 간직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함께 ...... (흙)


[아가서 2:8-14]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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